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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림 소개 테오도르 제리코(Theodore Gericault), 메두사호의 뗏목(The Raft of Medusa, 1818-19) 그림 <메두사호의 뗏목>은 1816년 7월 2일 난파된 프랑스의 프리깃함 ‘메두사호’와 관련되어 발생한 실제 사건을 재현하였다. 1816년 6월, 프랑스는 영국으로부터 식민지를 돌려받기 위해 아프리카 세네갈로 4척으로 구성된 원정함대를 파견했다. 지휘함인 ‘메두사호’에는 총독 가족과 함께 육군 사병, 수병, 선원, 식민지 개발 정찰대 등 400여 명이 타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배가 난파된다. 그림 1. 메두사호의 실제 뗏목 (출처; Wikipedia) 총독 가족, 선장, 장교, 수병, 선원, 일부 승객 등 230여 명은 여섯 개의 구명보트를 타고 대피하였으나, 구명보트가 충분하지 않아 나머지 152명의 육군 장교, 사병, 선원, 승객 등은 좌초한 범선의 돛대와 갑판 등을 잘라 급조된 뗏목(그림 1)에 올라탔다. 원래 계획은 뗏목을 구명보트와 밧줄로 매달아 육지까지 끌고 가려 했으나, 구명보트에 타고 있던 누군가가 뗏목과 연결된 밧줄을 끊어버리고 만다. 결국 뗏목에 있던 152명은 망망대해에 버려졌는데, 당시 그들에게 준비되었던 식량이라곤 몇 통의 물, 포도주, 비스킷뿐이었다. 이후 그들 중 일부는 파도에 쓸려 바다로 사라졌고, 식량 및 물 부족에 의한 극심한 기아와 탈수, 지독한 추위와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 상황이 점점 극으로 치달으면서 내부 반란과 폭동 그리고 (글로 옮기기 어려운) 광기가 표출되면서 죽음이 속출한다. 다행히 난파된 지 13일 후 원정함대의 ‘아르귀스호’에 구조되었는데, 그때까지 생존한 사람은 겨우 15명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그마저도 구조 후 5명이 추가로 사망하여, 최종 생존자는 단 열 명이었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이 사건을 은폐하려 하였으나, 뗏목에서 살아남았던 두 명의 생존자에 의하여 신문 및 책으로 알려지면서 사건의 전모가 폭로된다. 그림 1. 『메두사호의 뗏목』 부분 그와 같은 내용을 알게 된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는 그림 <메두사호의 뗏목>을 완성하여 사건의 참혹한 진상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그림 <메두사호의 뗏목>은 두 개의 삼각형 구도로 사람들이 모여 있다. 왼쪽의 삼각형 구도에는 돛대를 중심으로 절망, 포기, 비탄, 죽음의 사람들이 배치되었고, 오른쪽 삼각형 구도에는 지평선 위 조그만 점 같은 구조 범선을 향해 온 힘을 다하여 옷을 흔들어 대는 흑인 소년 중심으로 희망, 환희, 감동, 생(生)의 사람들이 배치되었다. 그리고 두 삼각형 구도 사이에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마침내 구조선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바로 이 사건을 언론지에 알렸던 군의관이다. 당시 프랑스는 워털루에서 패전한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왕정복고 시대를 맞이하였으며, 루이 18세 정부는 왕당파 일원들에게 일종의 정치적 보상을 쏟아 냈다. 그런 과정 중 원정대의 프리깃함 ‘메두사호’ 선장도 왕당파의 일원이었던 쇼마레 자작(Viscount Hugues Duroy de Chaumereys)이 임명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는 과거 시민 혁명 이후 현직에서 물러난 ‘낙하산 선장’으로, 파도와 포탄이 난무하는 바다에서 자신과 부하들의 생존을 위하여 며칠씩 뜬눈으로 지새우고 고민해 본 경험이 지난 20년 동안 없었던 인물이었다. 한마디로 오랫동안 현장경험이 전혀 없는 비전문가(non-expert)를 막중한 프로젝트의 최고책임자로 선임한 것이다. 그림 2. 메두사호 조난 당시의 상황 [1] 원정함대의 총지휘관은 통상적으로 휘하의 배 3척과 보조를 맞추면서 항해해야 하는데 그리하지 않았고, 선박들의 무덤으로 악명 높은 아르갱 모래톱 근처에서도 항해 규범의 위치 측정 및 항진 방향 조절 등을 게을리하여, 종국에는 ‘메두사호’가 좌초된다 (그림 2). 또한 안전장치도 없이 급조된 뗏목에 수많은 사람을 태우는 바람에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망망대해로 보내 끔찍한 인명 피해를 초래했다. 메두사호의 선장은 4척의 배로 이루어진 세네갈 원정대의 총지휘관, 즉, 리더(leader)였다. 그 당시 총지휘관의 배에는 지난 수십 년간 나폴레옹 함대에 소속되어 해상 전투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experts)인 베테랑 장교들이 동승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장은 전문가의 고언에 귀를 닫고 의견을 무시하였다. 쇼마레 선장은 자신의 방식으로 세네갈 원정함대 지휘함의 최고 책임자가 되었고 또한 속칭 나름 출세하였기에, 자신의 판단과 방식을 고집하였다. 그 원정대에는 일생일대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전 재산과 온 인생을 걸고 많은 사람이 동승하였다. 하지만 당시 리더였던 메두사호 선장의 아만이즘으로 그 사람들의 꿈과 재산은 물론 140 여명의 귀중한 생명까지도 송두리째 앗아갔다. 2. 그림의 배경에 대한 소견 그림 3. 아만이즘(amanism) 미숙했던 개인이 정규 및 비정규 과정의 배움을 통하여 능력을 쌓아 전문 분야에서 인정받고 또한 세상에서 살아갈 탄탄한 역량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능력과 역량의 도움으로 오욕(五慾)이 충족되고, 특히 재력, 명예(권력), 지력(知力) 등을 풍성하게 갖추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야누스(Janus)적인 나’가 형성된다. 그 ‘야누스적인 나’는 한편에서는 풍성한 성취에 따른 커다란 만족과 큰 기쁨을 준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본인 방식으로의 성공이 객관적으로 인정되고 쌓이면서, 본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내가 옳다!”, ”내가 최고다!”라는 아만이즘(그림 3)을 형성한다. 아만이즘은 당사자의 귀를 막아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방해하고, 시야를 좁게 만들어 타인의 창의적 의견과 아이디어를 보지 못하게 가리고, 상대방에 대한 인정과 공감능력을 떨어뜨린다. 이러한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고착화되면서 기쁨을 주었던 ‘야누스적 나’는 도리어 주위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종국에는 본인을 곤경에 빠뜨린다. 어떤 사안을 평가하고 결정하는 권위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만이즘에 휩싸이면, 본인의 식견과 다른 사람 (특히, 후배)의 새롭고 창의적 생각과 의견을 평가절하하거나 무시해버린다. 심한 경우에는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 이용하여 그러한 의견을 제시한 사람의 기회와 성장을 의도적으로 막아버리거나, 극한 경우에는 외부적으로는 공식적 절차를 밟아 관련 단체나 조직에서 축출시켜 버린다. 이와 같은 사례는 일반 직장 및 조직은 물론이고 객관적이고 이성적 잣대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과학계, 자유롭고 창의적 발상이 존중되어야 할 예술계의 역사에서조차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그와 같은 사람들 중에는 해당 분야에서 출중한 업적을 이루어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대가大家들도 적지 않다. 그와 같은 현상이 더욱 심화되면 ‘밧세바 신드롬(Bathsheba syndrome)’ [2] 에서 보여주듯이 자신이 모든 상황(재원, 인력, 정보 등)을 통제할 수 있다는 과도한 자신감에 도취되어 현실감을 잃고, 본인은 절대적 지도자이기 때문에 일반적 윤리 기준이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오만과 도덕적 인지 부조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종국에는 자기중심적 유혹과 도덕적 타락에 빠지게 되면서, 자신의 몰락은 물론 리더의 힘과 영향력에 압도된 상대방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아만이즘은 오랜 기간에 걸려 습관화되고 고착화되어, 본인이 아만이즘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본인이 제 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리하여 본인은 나름 최선의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본인이 속한 조직(단체)의 구성원은 물론 매일 살을 맞대고 살고 있는 배우자 및 가족에게 부정적 감정의 경험을 반복적으로 제공한다. 또한 조직(단체)이나 가정에서 구성원 혹은 가족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으며, 심한 경우에는 그림 『메두사호의 뗏목』에 연관된 사건에서 보여주듯이 본인을 믿고 따랐던 사람들의 소중한 꿈과 재산은 물론이고 귀한 생명까지도 손상시킨다. 3. 이 그림을 통해 학생들이 공부하고 생각해 볼 내용 (1) 의사가 아만이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 병원조직은 다섯 직군(의사, 간호사, 진료지원, 행정, 기능직)으로 대분되며, 병원전체 조직에 나비효과를 지닌 군은 의사직군이다(참고자료 1). 의사는 개업을 하든,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에 근무하든 의료조직의 특성상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리더의 위치에 있게 된다. 리더로서의 의사는 환자 진료 및 의학 발전의 책임과 함께 조직(의원, 병원) 발전에 대한 책임을 부여받는다. 그런데 필자 자신이나 일부 의사 동료들을 관찰해 보았을 때 (필자의 경우는 병원보직을 맡기 전까지는) 환자 진료 및 의학 발전에 대한 책임에만 관심이 많았지, 조직(병원) 발전에 대한 책임은 상대적으로 관심이 극히 적었다. 즉, 병원조직에서의 리더에 대한 자각, 관심 및 이해가 적었고, 상황이 그러하다 보니 연계적으로 리더에 대한 준비가 턱도 없이 부족하다. 10여년 전 청년의사에서 주최하여 매년 개최되는 HiPex [3] 에 참가를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 참석자 참여형태의 토론주제가 ‘병원혁신을 가로 막는 4대 걸림돌’이었는데, 참석자 중 한 명이 ‘의사들의 참여부족’을 제기하였을 때, 전국의 여러 병원에서 참석한 다른 직군의 참석자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100% 절대 공감의 박수를 치면서 환호하였다. 다른 병원에서도 의사직군의 상황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필자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그 자리가 바늘방석으로 느껴졌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병원은 환자 진료와 의학 발전에 기여하는 공공성도 중요하지만, 다른 직장이나 기업처럼 전체 직원의 경제적 생활 기반이며 삶 및 전문가의 보람을 체감하는 터전이다. 따라서 (직원수에 식구를 곱한) 전체 직원 가족의 탄탄한 삶을 위하여 일정 수준 이상의 월급(임금)을 안정적으로 제공하고 또한 물가 인상에 맞추어 매년 올려 지급해야 한다. 또한 환자들에게 최선의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최신의 의료 장비를 매년 새로이 구매하고 병원 관련 시설들도 새롭게 보강해야 한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매출의 꾸준한 성장과 함께 포지티브 의료이익을 위한 병영 경영의 성공이 필수적이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의사직군이 유념할 사실은 병원 조직은 (매우 특이하게도) 병원장 및 주요 보직자를 전문 경영인이 아닌 의사직군이 맡게 된다는 점이다. 마치 그림 <메두사호의 뗏목>에 관련된 원정함대의 총책임자처럼, 의사직군 중 누군가는 언젠가 작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의 병원 직원 및 가족에게 안정적 직장을 보장하고, 더 나아가 직원들의 꿈과 보람을 키우고 가시화시킬 책임을 부여받게 된다. 경영 성공을 위한 리더십의 핵심은 구성원의 자발적 협조와 추종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참고자료 2). 그리 되려면 직원들 즉, 사람들과의 공감과 소통이 중요한데, 언론을 통해서 간간히 보고되는 의사직군의 현실은 사뭇 다르다. 일례로 10여년 전 순천향대학 부속 병원 간호사(449명)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중 ‘싫어하는 의사’에 대한 내용이다. 결과는 감정기복이 심한 의사(48.7%), 불성실하고 교감 못하는 의사(17.3%), 권위주의적인 명령조의 의사(10.5%), 그리고 기타로 반말하는 의사, 간호사를 무시하는 의사, 불친절한 의사 등이었다 [4]. 성공 경영을 위한 직원들의 자발적 협조와 추종을 위한 공감, 소통과는 괴리가 큰 결과였다. (2) 의사가 아만이즘에 빠지기 쉬운 배경 오랫동안 성공만을 경험한 경우에 “(본인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않고, (중략) 터널처럼 아주 좁은 시야를 갖게, (중략) 오만하게 만든다(참고자료 3)”의 아만이즘 씨앗이 심어진다. 의사직군이 병원이나 가정에서 여러가지 원만하지 못한 상황을 초래하는 아만이즘에 상대적으로 쉽게 빠지게 되는 이유는 아래와 같이 추정된다. 첫째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의과대학에 입학하려면, 수능기준 고등학교 성적도 전국 최상위권의 성적이어야 가능하다. 이는 많은 경우에 이르면 중학교 때부터 출중한 성적으로 본인이 속한 그룹에서 두각을 나타냄을 의미한다. 그 학생은 학교에는 물론 집에서도 우대받는 존재로 떠받들듯이 키워진다. 필수로 참여해야 할 집안 공식 행사에 빠져도 되고, 오직 자신의 성적을 위하여 매진할 수 있게끔 가정 및 학교에서 배려해준다. 의과대학 입학 후에는 장차 의사될 재목이라는 암묵적 동의 하에 계속하여 학교 및 가정에서 소중하게 대우받으며 여러 혜택이 지원된다. 이후 의사 면허 취득 후에도 진료 현장 및 조직에서도 우대되고 받들어 지는 생활이 계속 이어진다. 다소 오래된 기사이지만 ‘심층취재: 몰락하는 의사들’ [5] 의 제목으로 의사들의 자살을 다루었다. 내용 중 의사의 아만이즘 배양 환경과 후유증을 날카롭게 지적하였는데, 현재에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추측된다; 의사들은 살면서 위기관리에 대해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잖아요. 의대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주변에서 대우만 받아요. 세상 사람들로부터 한 번도 멸시당하거나 내몰려본 적이 없어요. 남자가 전문의 따고 군대 갔다 오면 30대 초반이 됩니다. 전문의 딸 때까지의 생활을 생각해보세요. 새벽부터 한밤 중까지 병원에서만 살았을 거예요. 오로지 병과 환자만 봤지 사회의 톱니바퀴를 느낄 시간이 없었잖아요. 사회적 스트레스에 단 한 번도 노출된 적이 없었을 것이고, 엘리트 의식에 취해 살았을 겁니다. 한국의 부모들, 자식이 의대를 다니면 공부만 하게 하지 집안의 고민이나 고통을 공유하게 하지 않아요. 둘째는 의과대학 교육내용 중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아만이즘에 싸여있는 본인의 모습을 제3자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관찰(일명 내관(內觀 introspection))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과수업은 매우 빈약하다. 또한 그러한 과정이 마련되었다 하더라도,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행위가 진료 현장 혹은 일상 생활 중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도록 몸에 배어 습관화하려면 최대 10년이상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교육되어야 한다. 의사직군의 고등교육과정은 의과대학 6년, 인턴 1년, 전공의 3~4년, 전임의 1~2년 도합 11~13년으로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에서 교육기간이 가장 길다. 하지만 의과대학 정규교육 및 의사면허 취득 후 교육과정에서도 그러한 과정은 공식적으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셋째는 상대방을 공감하고 배려하지 못하는 아만이즘의 잉태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은 의과대학 정규교육 및 의사면허 취득 후 교육과정의 내용이다. 그 기간 동안의 교육내용은 의학적 및 과학적 사실의 습득으로 이성적이고 어찌 보면 다소 기계적 사고의 능력이 우선시된다. 그러한 과정에 (본인도 모르게) 공감 및 배려 등의 감정 능력이 저하되고, (본인도 모르게) 마주하는 사안에 감정의 흔들림을 가능한 절제하도록 훈련되고, (본인도 모르게) 질병과 관련된 사연과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보다는, 혈액, 영상, 조직 검사 등 손상된 인체의 물질적 결과에만 더 집중하게 된다. 마치 영화 이퀼리브리움 [6] 에서 감정이 표현되지 못하도록 매일 주사 맞고 기계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점점 변해간다. 이 역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된다. 4. 심화학습 인간에게 진화적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생존과 번식이었고, 현재에도 그 중요성은 전혀 변함이 없다. 특히 생존과 연관된 건강과 질병은 다른 그 어떤 사안보다 우선시된다. 의사라는 인간은 인간의 이와 같은 절대적 사안에 의업으로 관여하며, 그것을 통하여 환자 및 보호자들에게 희망, 웃음 그리고 기쁨을 줄 수 있는 선한 능력자다. 의과대학생은 각자 다양한 이유와 목표를 가지로 의과대학에 입학했겠지만, 본인이 앞으로 부여받게 될 선한 능력이 보다 원만하게 그리고 보다 넓은 세상에 펼쳐지기 위해서는 동료 의사 및 병원 내 다른 직군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의학 공부 이외에 추가적 준비로, 기회가 될 때마다 다음 내용에 대한 자문(自問)을 권한다; (1) 의사로서 나는 행여 아만이즘에 빠져 있지 아닌지 제 3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있는가? 필자는 1979년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현재까지 40년 이상 의업에 종사하면서, 의사로서 대학병원에서 그리고 남편과 아빠로서 가정에서 다양한 사건(life events)을 경험했다. 그 중 의사직군에 종사하는 동료 및 미래에 의업에 종사하게 될 후학들에게 꼭 알리고 공유하고 싶은 내용이 (본인도 모르게 형성된) 아만이즘이다. 현재까지 병원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기간 중 약 1/3인 10년간 병원 보직(진료부장 4년, 부원장 4년, 병원장 2년)을 맡았다. 필자가 아만이즘에 쌓여 있다고 자각하고 난 후 병원내 의사직군을 우연히 살펴보기도 하고 또한 보직을 맡은 동안에는 내부직원의 민원을 공식 루트를 통해 보고 받기도 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의사직군에서 종종 관찰되는 아만이즘으로 인하여 같은 과 혹은 타과에 근무하는 선-후배 교수 그리고 병원내 다른 직군의 직원들이 겪게 되는 부정적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비슷한 사례의 다른 대학 상황도 매우 우연히 접하게 되는데, 몇몇 과원의 아만이즘에 따른 과원간 불화 그리고 심한 경우에는 단단했던 해당 조직이 얼마 후 와해되는 경우도 경험했다. 또한 보직 기간 중 동료 교수, 전공의, 인턴 중 극히 몇명은 환자 및 보호자로부터 진료 민원을 보고 받은 적 있다. 그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아만이즘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만 있었다면 충분히 예방될 수 있는 사안들이 적지 않아서 보고를 받을 때마다 못내 아쉬웠다. 가정적으로 필자는 결혼 후 근 20년 이상 집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였고, (필자에게 아만이즘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 집사람과의 불화가 오랜 동안 반복적으로 이어졌다. 그로 인하여 집사람에게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자주 입혔고, 집사람은 현재에도 간간히 그때 입은 상처에 대한 부정적 경혐의 내용을 (부정적 감정은 거른 후) 생생하게 토로하곤 한다. 그 내용을 들어보고 제 3자의 입장에서 과거의 필자 자신을 관찰해 보면, 지난 세월 아만이즘에 휩싸여 집사람의 말과 의견을 철저히 무시하는 마치 일종의 성격 장애자(?)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필자 자신과 집사람은 서로 각자가 분노, 우울, 실망, 슬픔 등 부정적 감정에 휩싸였고, 이어서 이런 저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가정 내 문제가 발생하였다. 결국 한번뿐인 삶의 소중한 시간이 소모되었고, 더 나아가 발생된 문제 중 몇개는 해결하는 과정에 적지 않은 부(富)도 손실되었다. 그런데 보다 절실한 문제는 (필자의 아만이즘 때문이라고 깨닫기 전까지는) 외부적으로는 나름 자타가 공인하는 의업의 성실맨으로 살고 있다고 내심 자만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러한 일이 필자에게 발생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기에 무척 답답하고 우울한 적도 많았다. 그나마 다행이 것은 지난 세월 동안 필자에게 마치 허리케인처럼 닥쳤던 그리고 이해할 수 없었던 문제가 나 자신의 아만이즘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점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심적 고통, 단 한 번 뿐인 귀중한 시절의 감정적 소모적 낭비 그리고 부의 손실에 따른 상처는 아직도 남아있어, 충분히 복구되려면 앞으로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이에 그러한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필자는 틈틈이 그림 <메두사호의 뗏목>을 반복하여 보면서 그 의미를 되새긴다. 특히, 병원 조직의 최고 책임자인 병원장직을 수행하는 2년 동안은 혹시 오랫동안 필자의 습(習)이었던 아만이즘이 병원 경영 중 행여 재발되지 않도록 조심하고자 의도적으로 자주 들여다 보았다. 앞으로 선한 능력자인 의사가 될 후학들이 행여 (본인도 모르게) 아만이즘에 휩싸여 병원 및 가정에서 필자와 같은 직접-간접적 경험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며, 이에 대한 준비를 권한다. (2) 의사로서 나는 병원조직 리더로서의 책임을 인식하고 준비하고 있는가? 병원 조직은 수 십종의 분야에서 국가공인자격을 받은 전문가(예, 의사, 간호사, 방사선사, 약사, 회계사 등등)들로 구성된다. 그런데 의사는 단독 혹은 그룹으로 개원하든, 종합병원에서 봉직의로 근무하든 혹은 대학병원에서 봉직하든 병원조직의 특성으로 리더의 역할이 주어진다. 리더인 의사는 의료 진료 업무 진행의 출발점이며, 경영적으로도 의료 수입 창출의 시작점이다. 병원의 전체 시스템은 의사의 진료 업무를 최우선에 두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되고 작동되도록 편성되었다. 또한 의사는 각자의 진료 현장에서도 의료 업무의 특성 상 동참하는 구성원의 리더로서 진료를 주도하여 수행할 수밖에 없다. 또한 병원 조직의 주요 보직은 의사가 맡아야 한다. 즉 의사는 언젠가 누군가는 병원 경영에 관여해야 된다. 병원의 전체 직원들은 병원에서 제공한 급여로 각자의 생활과 가정을 경제적으로 안정하게 영위한다. 병원은 각자가 전문 분야에서 공부하고 경험한 지식과 술기를 진료 현장에서 행하면서, 직업적 그리고 삶의 보람을 느끼는 장이다. 그와 같이 소중한 병원이 경영적으로 성공하고 안정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의사 중 누군가는 언젠가 경우에 따라서는 몇 일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며 경영에 힘써야 한다. 경영의 핵심으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 것은 리더십인데, 현재 의과대학의 공식적 의학교육과정에는 리더십을 포함한 병원경영 등에 관련된 학업과 과정은 극히 제한적 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참고 자료 (1) 김종혁, 안근용, 제원우. 피터 드러커가 살린 의사들: 대학병원 편, 21세기 북스, 2014. - 의사에게 ‘환자’ 및 ‘의학’에 대한 책임에 추가적으로 ‘조직(병원)’에 대한 책임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책이다. (2) 정동일. 사람을 남겨라: 인재를 키우고 성과를 올리는 리더의 조건, 북스톤, 2015. - 경영에서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배웠고, 병원보직자들과의 독서토론용으로 자주 애용하였다. (3) 이안 로버트슨. 승자의 뇌, 이경식 역. 알에이치코리아, 2013. - 성공만을 경험한 사람이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일깨워 준 책이다. 매년 병원 실습 나오는 의과대학생에게 읽히고 문답식 토론으로 학생 본인 스스로를 관찰하는 데 사용하였다. (4) 윤운중. 윤운중의 유럽미술관 순례, 모요사, 2013. - 그림을 통한 인간이해(human understanding)에 귀중한 자료를 많이 얻었다. 각주 [1] 그림출처: H. 사비니ㆍA. 코레아르, 메두사호의 조난, 심홍 역, 리에종, 2016년 [2] 성경에서 다윗이 부하의 아내인 밧세바를 임신시킨 후 이를 은폐하기 위해 자신의 부하를 죽게 만든 일화에서 비롯된 말. 권력을 쥔 사람이 스스로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도취되어 현실감각이 흐려지고 결국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는 현상을 가리킨다. [3] Hospital Innovation and Patient Experience Conference [4] 대전일보. 2012.1.26 [5] 신동아 (2008.6.1) [6] 원작명 Equilibrium: Killer of emotions, 2002.
그림 1. 클림트. <키스(The Kiss, 1907-1908)>, 벨베데레 미술관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작품 <키스(The Kiss)>를 보다가 영감이 떠올라 고지식한 해부학 교수가 의학사와 미술사의 언저리를 여행한 경험을 《Journal of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아래 JAMA)》에 논문을 싣게 되었다. 순탄치는 않았던 그 과정에 쌓인 이야기를 추려 『클림트를 해부하다』라는 책을 쓰게 된 이야기를 공유한다. 뜻밖의 여행에서 ‘키스’의 서사에 빠지다 2020년 COVID-19가 전 세계를 위협하던 시기에 우울하고, 위축된 1학기를 견디고 있었다. 부산관광공사에서 6월 말에 열리는 “부산 MICE로드쇼”에 초청한다는 이메일이 왔다. 의학에 종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MICE라 하면 자연스럽게 실험용 생쥐를 연상하지만, MICE 산업은 Meeting, Incentive tour, Convention, Exhibition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의 첫머리를 딴 것이다. 요즘 지자체들이 학술대회 등을 유치하여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는 굴뚝 없는 산업으로 많은 공을 들이는 분야이다. 필자가 2018년 한국 현미경학회 회장으로 일할 때, 제19회 세계 현미경학회(IMC19) 시드니 대회에서 미국, 스페인, 네덜란드, 남아공과의 치열한 유치 경쟁을 뚫고 2022년에 열리는 세계 현미경학회(IMC20)를 대한민국 부산에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부산관광공사 직원들의 물심양면의 지원이 있었고, 나 자신도 학술활동을 하면서 국가를 위해 뭔가 기여했다는 뿌듯한 느낌으로 동료 연구자들과 가슴 뭉클한 밤을 보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학술대회 준비를 위해 부산을 자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부산관광공사에서 이러한 인연으로 초청을 한 모양이다. 도착 첫 날 만난 부산의 바닷바람만으로도 잠시나마 COVID-19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었다. 둘째 날 아침 일정으로 해운대 벡스코 건너편에 있는 “뮤지엄 다(현재 뮤지엄 원)”를 방문하게 되었다. 전시실에 들어서니 명화에 동적 요소가 더해진 디지털 영상들이 걸려 있었다. 전시실 입구 쪽에 클림트의 <키스(The Kiss)>와 <다나에(Danae)>가 보였다. 무심코 그림을 보는데 <키스>의 그림에서 알 같은 형태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바로 곁에 걸린 <다나에>에는 발생학 시간에 나오는 주머니배가 명확하게 그려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전시실 2층에는 카페가 있었는데 커피를 받아 들고 테이블에 앉았다. 테이블에 설치된 모니터에는 <키스>와 <다나에> 동영상이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2006년 유럽 신경과학회 때 반강제(?)로 들은 칸델(Eric Richard Kandel, 1929~ ) 교수의 강연을 회상하며 역사 속으로의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칸델 교수의 강의와 『통찰의 시대』 칸델 교수는 2000년에 기억의 메커니즘을 전기생리학적으로 규명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분이다. 의대생 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신경과학에 대한 동경으로 꾸역꾸역 읽었던 명저 『Principles of Neural Science』의 저자이기도 하다. 당시에 저는 학습을 할 때 뇌에서 일어나는 시냅스의 변화를 연구하고 있었는데, 학회에 참석하니 칸델 교수님의 특강이 있다고 해서 당연히 노벨상을 받은 학습과 기억에 대한 내용이라 생각하고 강당에 들어갔다. 그러나 놀랍게도 강연 제목은 “빈 의과대학과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미술의 기원”이었다. 미술에 식견이 없었던 내게는 다소 당황스러웠으나, 이미 꽉 찬 강당에서 빠져나가기엔 무리였다. 결과적으로 반강제적으로 강연들 듣게 된 것이다. 강의 내용은 세기말 빈 의과대학의 성취와 융합적 학풍이 모더니즘을 자극하였고, 클림트의 그림에는 생물학적 표상과 같은 특징이 나타나고, 실레(Egon Schiele, 1890~1918)와 코코슈카(Oskar Kokoschka, 1886~1980) 등 유명한 화가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학습과 기억에 대한 연구에 몰입되어 있던 필자는 약간의 실망감과 함께 듣는 둥 마는 둥 지나쳤던 기억이 있다. 이후 2012년 칸델 교수님은 『The Age of Insight』를 출간하였다. 우리나라에는 2014년 『통찰의 시대』로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이 책은 1900년 빈의 상황과 클림트, 실레, 코코슈카의 그림을 중심으로 과학과 예술이 어떻게 대화를 주고받았는지를 살펴보며 신경과학적으로 인간이 사물을 어떻게 알아보고, 아름다움이란 추상적인 개념이 어떻게 인식되는가 등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칸델 교수의 광팬이라 무작정 구입하긴 했지만, 당시로서는 내용이 별 재미가 없어 3분의 1쯤 읽고 덮어 버렸다. JAMA에 논문을 내다! 칸델 교수의 강연을 들은 지 10년이나 지난 어느 날,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운명적으로 클림트의 작품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키스>와 <다나에>에서 본 발생학적 도상이 나의 머리를 맴돌고 있었다. 연구실에 도착하자마자 책장에 꽂혀 있던 『통찰의 시대』를 꺼내 들고 정독하기 시작했다. <키스>에는 칸델 교수의 설명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칸델 교수는 정자와 난자의 존재를 말씀했지만 나는 <키스>에서 생명의 시작을 담당하는 생식세포인 정자, 난자, 수정 과정, 수정난이 분할되어 오디배에 이르는 과정과 고해상도로 그려진 정자의 목부분에 있는 미토콘드리아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은 저널에 에세이 형식으로 <키스>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점점 내용에 대한 독창성에 대한 믿음이 강해지고, 욕심이 생겨 《JAMA)》에 투고하게 되었다. 요즘은 전자 저널이 대세여서 인쇄된 잡지를 볼 기회가 많지 않지만, 필자가 의대생일 때만 해도 3대 의학 저널인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아래 NEJM)》, 《The Lancet》, 《JAMA》 등을 의국과 도서관에서 쉽게 볼 수 있어, 선배들이 던져놓은 저널을 집어 보기도 했었다. 특히 《JAMA》는 표지가 다양한 명화로 장식되어 있어 보기가 좋았고, 그림에 대한 에세이가 실렸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JAMA》는 의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다루는 이라는 섹션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 내 연구 결과를 투고하면 제격이겠다고 생각했고, 말이 되든 안 되든 모두 써서 투고했는데 다행히 거절당하지 않고, 다섯 번의 논문 수정을 거쳐 최종 논문 게재 승인을 받게 되었다. ‘키스’라는 작품을 살펴보자 (이 글의 많은 부분은 『클림트를 해부하다』 pp153~174에서 인용했다) 1907년에서 1908년 사이에 그려진 <키스>는 오스트리아 상징주의 화가 클림트의 대표작으로, 1908년 비엔나 미술전에 처음 발표된 작품이다. 처음에 클림트는 이란 제목을 붙였는데, 관객들은 황금빛 배경에서 막 키스를 하는 연인의 황홀경에 홀려서 <키스>라고 부르게 되었다. 전시회가 끝나기도 전에 오스트리아 황실에서 구매하였고, 지금은 비엔나의 벨베데레(Belvedere) 미술관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19년 CNN이 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가장 인기 있는 그림에 대한 설문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모나리자>가 1등을 차지했고, <키스>는 6위를 할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그림이다. 그림을 자세히 하나하나 살펴보자! 일단 금박과 은박이 많이 쓰여 물리적으로 관객들을 압도하는 면이 있다. 클림트의 아버지는 보헤미안 출신의 금세공사였다. 이러한 배경으로 클림트는 금박과 은박을 자신에 그림에 멋지게 활용한 화가였다. 우주의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황금빛을 배경으로 꽃이 만발한 초원 위에 두 연인은 무릎을 꿇고 막 입맞춤하려는 순간이 묘사되어 있다. 이미 여자는 황홀경에 빠져있고, 그 황홀한 느낌이 관객에도 이입된다. 남자의 망토를 보면 세로로 배치된 금색, 은색, 검정색의 직사각형이 있어 남성성과 강인함을 보여주고, 여자의 옷에는 여성의 생식력을 상징하는 원형과 타원형의 문양으로 채워져 있다. 미술사학자 코미니(Alessandra Comini, 1934~ )는 이러한 내용을 “원 형태와 수직형의 화려한 교합 속에서 아름답게 펼쳐지는 욕망의 상호 관계의 궁극적인 절정”이라고 평했다. 특히 칸델 교수는 좀더 구체적으로 남자의 옷에 그려진 세워진 직사각형은 정자를 상징하며, 여자의 옷에는 여성의 생식력을 상징하는 타원형과 꽃이 그려져 있다고 했다. 이렇게 칸델 교수가 분위기를 읽었다면, 나는 정자, 난자, 수정란, 그리고 분할이 시작되어 8세포기와 오디배 시기를 정확하게 포착했다. 해부학자로써 클림트가 연인의 옷 속에 숨겨둔 발생학적 코드를 찾게 된 것이다. 의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키스>를 이해하기 위해 발생학의 역사를 되새김하면 도움이 된다. 현미경의 발명으로 17세기에 정자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19세기 초에 난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와중에 사람의 발생 과정은 이미 축소 인간인 호문쿨루스가 정자 또는 난자에 내재되어 있다가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각각의 부분이 커지면서 인간이 된다는 “전성설(preformation)”과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각각 유래한 어떤 요소들(정액, 혈액)이 합해져서 이것이 분화 발달하면서 인간이 발생한다는 “후성설(epigensis)”이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이 문제는 극피동물인 성게를 체외 수정하여 현미경으로 실시간 관찰한 헤켈(Ernst Haeckel, 1834~1919)의 제자인 헤르트위그(Oscar Hertwig, 1849~1922)가 정자로부터 유래한 풋핵과 난자 속의 풋핵이 융합하는 과정을 통해 수정이 완성됨을 밝힘으로써 생명 탄생에 정자와 난자가 각각 기여함을 밝혔다 (그림 2). 그림 2. 성게 알 수정과정에서 정자로 유래한 풋핵(Male nucleus, 청색)과 난자로부터 유래한 풋핵(Female pronucleus, 적색)이 하나로 융합(Fused nucleus, 녹색)하는 장면을 스케치 한 장면 (After Oscar Hertwig, Embryology of Man and Mammal, 1905) 그림 3 정자가 난자에 접근하면 난막에서 돌기가 나와 결합하고(A), 정자가 운동을 하여 난막을 뚫은 후 핵이 전달된다(B). 이후 난막이 구조적 변화를 일으켜(C) 더 이상의 정자의 진입을 막는다. (After Oscar Hertwig, Embryology of Man and Mammals, 1905 중에서 Fol의 논문 그림 인용) 헤켈의 또 다른 제자인 폴(Herman Fol, 1845~1892)은 불가사리를 체외수정하고 실시간으로 추적 관찰한 결과, 하나의 정자가 수정되고 나면 난막이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켜 더 이상의 정자가 수정되지 않은 것을 발견하여 1개의 난자에는 1개의 정자만 수정되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림 3). 그림 4. <키스>에서 발견되는 남성성과 정자 <키스> 그림에서 정자를 찾아보자 (그림 4). 남성성을 상징하는 부분은 남자의 옷에 표현되어 있다. 클림트는 세로로 긴 직사각형을 남성의 성기 모양의 상징으로 써왔다. 또한 클림트는 정자의 형태를 스타일리쉬한 도식으로 표현하였다. 여자의 옷을 살펴보면 도라지 꽃 같은 다각형이 많이 관찰된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이 다각형에 물결치는 듯한 꼬리가 붙어 있는데, 이것이 광학현미경으로 관찰되는 정자의 모습이다. 이미 19세기에는 광학현미경(LM) 기술이 충분히 발달되어, 이 정도의 영상을 얻을 수 있었다. 정자의 이미지가 다른 곳에서도 포착되는데, 이것은 매우 놀라운 발견이다. 다시 남자 옷 쪽을 살펴보자. 일부 속이 비워져 있는 검정 직사각형 주위에 흰색으로 둘러싸여 있는 검은 점들이 보인다. 얼핏 보면 다양한 배경처리용 무늬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전자현미경(EM)을 이용한 생물 조직을 분석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마치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했을 때 정자의 목 부분을 감싸고 있는 미토콘드리아’와 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오른쪽에 최신의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정자의 모습을 스케치 형태로 그린 걸 살펴보면 머리 부분에는 핵이 보이고, 그 위쪽에는 수정에 사용될 효소들을 포함하고 있는 첨단체가 보인다. 머리 아래에 붙어 목 부분에 좌우로 검은색의 반복되는 원형구조물이 보이는데, 이것이 미토콘드리아다. 이 미토콘드리아는 생물학적 에너지인 ATP를 생산하여 정자가 꼬리를 운동시켜 생식관을 통과해 최종적으로 난자에게 접근할 수 있게 한다. 이상한 점은 전자현미경이 1931년에서 1933년에 걸쳐 독일의 과학자 루스카(Ernst Ruska, 1906~1988)에 의해 발명되었는데, <키스>는 1908에 그려진 그림이라는 점이다. 알고 보니 당대에는 정밀한 관찰을 한 과학자가 이미 존재했었다. 메브스(Frederic Meves, 1868~1923)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이미 1899년에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듯한 정자를 그렸다(그림 5). 그림 5의 오른쪽 그림은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정자의 횡단면, 종단면 그리고 3차원 재구성 그림이다. 그림 5. 메브스가 그린 고해상도 광학현미경 그림과 전자현미경 사진으로 제작된 아트 포스터 <키스>에서 여자의 옷에는 난자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황금색을 배경으로 파란색으로 경계가 그려지고 속은 노란색으로 채워진 원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것이 난자의 형태이다. 마치 계란을 깨었을 때 보게 되는 형태와 유사하다. 그림 6. 수정되지 않은 난자(파랑)와 수정된 난자(주황) 자세히 다시 보면 대부분의 난자를 감싸고 있는 막이 청색으로 그려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유독 단 하나의 난자만 오렌지색으로 표현되었다 (그림 6). 바로 그림 3C에서 수정 후 구조가 바뀐 것을 클림트가 색상으로 코딩한 것이다. 즉, 아직 수정되지 않은 난자는 청색으로, 수정된 난자는 오렌지색로 표현하였다. 통상 오렌지색은 주의•경고를 뜻함으로 ‘난 이미 수정되었으니, 제게 오지 말고 다른 곳으로 가세요’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 같다. 수정된 접합자는 어떻게 배아로 발달해 가는가? 수정의 결과로 염색체수가 회복되고 이제부터는 유사분열을 통해서 세포 수를 늘려나간다. 이때 늘어가는 세포를 분할알갱이(blastomere)라고 부른다. 분할알갱이의 수에 따라 2, 4, 8 할구체로 불리고, 12개 이상이 되면 뽕나무 열매처럼 보인다고 해서 오디배라고 한다. <키스>에 8할구체와 오디배가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키스>에는 인간 발생 3일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7. 접합자가 분할되어 8할구체 (A의 적색 원)와 오디배((A의 보라색 원)로의 발달 되는 것을 보여줌, B는 그레이(Henry Gray)가 쓴 『Anatomy』에서 인용함 (미국에서 발행한 20ed, 1918) <키스>는 시공을 넘나들게 하는 포트키(portkey) 포트키(portkey)라는 멋진 마법의 도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해리포터』를 읽으면서였다. 미리 마법을 걸어둔 어떤 물체에 접촉하게 되면 빠른 속도로 지정된 공간이동을 할 수 있는 신박한 마법이다. 클림트가 <키스>에 걸어둔 마법의 포트키인 발생학적 아이콘을 발견하게 되면서 나는 이것을 통해 클림트가 활동하던 시공인 세기말의 빈으로 타임슬립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그림 속에서 발견한 발생학적 소견을 중심으로 쓰다 보니 정말 몇 줄이 되지 않은 전형적인 이과생의 입 짧은 보고서가 되고 말았다. 여기에 역사적, 미술사적, 의학사적 고찰을 하나하나 넣어가려고 하니 새로운 공부가 필요했다. 바로 과학사, 미술사, 그리고 지성사다. 내가 발견한 것은 의학 공부를 하면서 교과서 등에 있는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1) 어떤 과정을 거쳐서 우리가 공부하는 교과서 나오는 내용이 발견되었을까? (2) 클림트라는 화가가 어떤 존재였기에 그 내용을 잡아서 자신의 작품 속에 녹여내었을까? (3) 이 과정에서 필연코 있을 수밖에 없었던 과학자와 예술가의 교류는 어떻게 일어났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공부한 내용을 정리한 것을 『클림트를 해부하다』라는 책으로 펴냈다. 글을 써 가는 동안, 해부학에만 집중하여 균형 잡힌 교양이 부족한 의과학자가 넓은 세상을 보게 되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새로운 놀이를 배웠을 때처럼, 나는 그 모든 과정을 즐겼다. 이때 큰 골격이 되어준 것은 뜻밖에도 반강제로 들은 칸델 교수의 강연과 책 『통찰의 시대』였다. 이 책을 읽고 클림트와 관련된 책과 논문을 차근차근 읽어가고, ‘세기말의 빈’이라는 인류 지성사의 아주 특별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 접하게 되었다. 지금 세계 최고 수준의 의학을 생각하면 어느 나라를 생각하는가? 아마도 나라는 미국, 지리적으로는 미국 동북부에 있는 의대를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의학계의 최고 저널 중에 하나인 《NEJM》의 이름은 바로 “New England 지방 의학잡지”인 것이다. 이들이 세계 의학을 주도하기 시작한 것은 세계 2차대전 이후이다. 세기말 빈은 세계 의학의 중심지 중 하나였고, 미국의 의사들이 독일어권 국가에서 유학하였고, 그중 하나가 빈 의과대학이었다. 유학생 중 미국 의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의사로는 오슬러(William Osler, 1849~1919), 할스테드(William Halsted, 1852~1922), 하비 쿠싱(Harvey Cushing, 1869~1939) 등이 있다. 특히 오슬러와 할스테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존스 홉킨스(Johns Hopkins) 병원을 창설하였고, 오슬러가 1892년에 저술한 내과 교과서는 40여 년간 세계 각국에서 내과학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클림트가 생물학, 의학, 진화 발생학적 지식을 접하게 된 것은 그의 적극적인 탐구력에 있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독서를 했다고 한다. 클림트의 서재에는 다양한 분야의 책이 있었고, 요즘으로 치면 “그림으로 보는 동물 백과” 같은 책이 있었는데, 클림트 작품을 채우는 아이디어의 원천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소양을 배경으로 당시 빈의 독특한 카페문화, 살롱 문화의 세례를 받았다. 빈의 살롱은 중산층 부인들이 자신의 거실을 개방하여 여러 분야의 지식인들 토론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제공하였는데, 저커칸들(Berta Zuckerkandl, 1864~1945)이 운영했던 살롱이 그중 가장 영향력 있는 살롱 중 하나였다. 그녀의 남편은 빈 의과대학 해부학 교수였다. 자연스럽게 클림트와 저커칸들(Emil Zuckerkandl, 1849~1910) 교수는 친해졌고, 실제로 해부학 실습실 견학을 하게 되면서 피부밑에 존재하는 인체 구조를 이해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클림트가 예술가를 위한 해부학 강연을 요청하여, 1903년 저커칸들 교수는 예술인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게 된다. 당시 해부학은 물론이고, 생물학, 발생학, 조직학, 진화론 등이 내용이 강의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모든 내용이 클림트의 작품의 중요 소재가 된다. 그 결과 1903년 강의 이후에 클림트의 작품에 현미경으로 관찰한 세포, 조직의 이미지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예술과 의학의 융합 애플의 창업자 잡스(Steve Jobs, 1955~2011)가 iPad2를 발표할 때 “애플의 창의적 DNA는 기술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기에 인문학이 결합하여야 비로소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이보다 먼저 클림트는 20세기 초에 이미 예술과 의학을 결합한 융합을 인류에게 보여준 것이다. <키스>는 두 연인의 에로티시즘을 보여줄 뿐 아니라, 1900년대 전후의 과학적 성과를 기반으로 피부밑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생명의 아름다움을 드러낸 의과학적 걸작인 것이다. 이 책을 쓰면서 접하게 된 빈 의과대학 해부학 교수였던 저커칸들 교수가 남긴 말이 인상에 남는다. “연구자, 과학자는 예술적 요소가 그에게 살아 있지 않는 한 결코 완전히 생산적일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과학자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과학의 교조주의를 극복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 저커칸들 교수가 클림트 등의 예술가와 소통하고 해부학 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예술과 과학의 통섭에 대해 20세기의 유명한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은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상상력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예술가다.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지식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상상력은 세상의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위대한 과학자는 위대한 예술가와 같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는 과학자와 같다.” 위대한 예술가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는 “내 그림은 연구이자 실험이다. 나는 예술 작품으로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내가 하는 모든 건 연구다”라고 말했다. 두 거인의 말로부터 결국 예술과 과학의 본질은 깊이 맞닿아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세상을 이해하고 잘 표현하기 위해서, 과학은 예술적 상상력을, 예술은 과학적 실험정신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우리 의사들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자유롭게 교류하고, 서로의 학문을 배우고 통섭한다면 새롭고 창의적인 의학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맺음말 필자는 전형적인 이과형 인간으로 의과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마치고, 기초의학교실에 남아 학생들에게 해부학을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살아온 아주 건조한 사람이었다. 고백하면 클림트의 작품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았다. 클림트의 작품에 그려진 과도한 노출과 나신들이 불편하게 느껴진 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키스>에서 보게 된 발생학적 도상을 통해 그의 작품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고, 클림트가 작품을 구성한 배경을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제는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좋은 취미가 하나 생겼다. 그림을 그냥 보지 않고, 공부하면서 살펴보고 읽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경험을 꼭 집어 표현한 최재천 교수의 말씀을 소개한다. “알면 사랑한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피상적으로 볼 때와, 공부하고 난 후 볼 때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주변에 관심 있는 것이 있다면, 공부하고 탐구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또 즐기시라. 이 과정은 여러분의 인생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줄 것이다. 추천 도서 (1) 유임주. 클림트를 해부하다. 한겨레출판, 2024. 위에서 기술한 내용은 주로 클림트의 <키스>를 중심으로 소개했으며, 클림트가 평생 추구했던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클림트의 작품에 숨어 있는 해부학적, 조직학적, 발생학적 아이콘들을 살펴보는 즐거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Part I: 클림트의 탄생 : 클림트를 해부하기 전 필요한 배경지식 제시 Part II: 클림트 코드를 파헤치다: 본격적으로 클림트의 여러 작품을 해부 Part III: 인간 예술의 기원을 좇다: 생명의 발생과 진화를 탐구한 화가들을 소개 (2) 전원경. 클림트. arte, 2018. 유럽의 예술과 문화, 역사를 배경으로 클림트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지식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클림트가 살았던 ‘세기말’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빈’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을 설명하고, 클림트의 다양한 작품을 편안하게 접할 수 있는 책이다. (3) 에릭 캔델. 통찰의 시대, 이한음 역, 알에이치코리아, 2014. 저자가 『클림트를 해부하다』를 집필할 때 기본이 되었던 책이다. 1900년 전후의 빈을 지성사, 과학사, 미술사적인 관점에서 소개한다. 흥미로운 것은 어떻게 빈 의대가 최고 수준으로 발전했는지?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함께 소개하는 부분은 의학도로서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하여 신경과학자로서 “우리는 어떻게 물체를 인식하고 아름다움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인식하는지?”에 대한 최근까지의 연구를 소개한다. 노벨상을 수상한 대가의 진면모에 접할 수 있는 대단한 책이다. (4) 칸 쇼르스케. 세기말 빈, 김병화 역, 글항아리, 2014. 지성의 용광로였던 세기말 빈을 다뤄 퓰리처상을 받은 책이다. 클림트가 살았던 빈을 역사적, 지성사적 관점에 조명한 책으로 클림트의 중요 작품에 대한 심도 있는 소개와 토론이 포함되어 있다. 20세기 초 빈이라는 시공에 꽃피운 수많은 사조가 싹튼 온상이었던 사회적 분위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의사는 어떤 직업인인가?” 이렇게 질문하기에 앞서, 우리나라에서 고등교육 과정을 거쳐 사회에 배출되는 다양한 직업인과 의사는 어떻게 다른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사회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 제 역할을 통해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의사는 물론 수많은 직업이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한 예로 법학대학원 과정을 거친 율사(律士)는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 문화·예술 장르에 종사하는 사람들 또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사회인’이며, 앞으로 의학계에서 종사할, 또는 이미 종사하고 있는 의료인 역시 사회의 한 구성원이다. 의학교육을 받은 사회인은 일반적인 사회인과 비교할 때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의료인’은 여느 직업군과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사람의 생명을 지근(至近)한 거리에서 대하는 것이다. 때에 따라 산모와 신생아의 건강을 살펴야 하는가 하면, 죽음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의학적으로 특별한 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분들도 의사가 만나서 그들의 고충을 해결해 주어야 하는 대상이다. 환자라면, 남녀노소(男女老少)는 물론 사회적 빈부(貧富)의 차별 없이 살펴야 하는 직업인이 바로 의료업에 종사하는 의사이다. 의과대학 교육은 이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사람을 직접 대상으로 하고, 모든 이들을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대하여 그들이 가진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른 직업군과 완연히 다르다. 이는 필연적으로 성별과 나이를 뛰어넘어 모든 사회계층의 사람들을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다. 의성(醫聖)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BC 460?~BC 377?)의 사상을 이어받은 이들이 이미 두 밀레니엄보다 더 전에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히포크라테스 선서(Hippocrates-Oath) ’에도 의사와 의학이 갖추어야 할 내용이 담겨져 있다. 특수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의학교육에 반영하여야 할까? 필자는 문화·예술을 가슴에 품은 의사를 배출하는 것을 염원한다. 이와 같은 의사를 배출할 수 있다면, 의과대학에서 의사가 되기 위해 자라나는 학생들을 교육함에 있어서 큰 몫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즉, 문화·예술을 가슴에 품고 있는 의료인은 그렇지 않은 사회인과 분명 구별될 수 있다고 믿는다. 1980년대에 국내 여러 의과대학에서 수업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 때 수업에 앞서서 우연히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의과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즉 고등학생 시절에 좋아하는 작품을 보기 위해 또는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한 연극공연을 감상하기 위해 공연장을 찾아간 적이 있는가? 또는 오페라나 교향곡이 좋아서 콘서트홀을 찾아가 감상한 적이 있는가?” 당시 수업에 참석한 학생 중 그렇다고 손을 들었던 학생의 숫자는 생각보다 적어서 20%를 넘지 않았다. 같은 질문을 다른 두 의과대학에서도 반복하여 던져 보았다. 그 응답률은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 적어도 50%는 가볍게 넘으리라 예상하였는데 의외로 저조하였다. 놀라움을 넘어서 참담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기대보다 유경험자가 적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교육전문가에 따르면 ‘공붓벌레 증후군’이라 했다. 즉, 의과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오로지 공부’만 하느라 멋진 공연 한 번 구경하지 못하고 대학에 입학했다는 뜻이다. 의과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문화와 예술적 소양을 지닌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시간이 없어서 문화를 즐길 수 없다면’ 문화를 강의실로 끌어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필자가 학장으로 재직하던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교육과정에 1994년부터 ‘의료인문학’ 수업을 마련했다. 이 시간에 왜 연극이 생활에 필요한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 의과대학 수업시간에 저명한 극작가를 초빙하여 극작가와 의대생들이 대화의 장을 가지도록 했다. 또 국악전문가를 모시고, 국악은 어떤 예술적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토론을 하기도 했다. 사람의 몸을 대상으로 하는 의사가 문화·예술적 감각을 키우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이다. 필자는 이보다 앞서 의학교육평가원이 설립되던 시기에 ‘의료인문학’의 중요성을 설파하기도 했고, 지금은 의학교육평가 항목에 의료인문학 교육내용이 필수항목으로 채택되어 있다. 1994년에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의료인문학 전임교수를 임용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많은 의과대학에서 인문학을 담당하는 전임교수가 임용되고 있는 것은 다행이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의과대학에서 문화·예술을 포함한 인문학 교육은 더 강화되어야 한다. 물론, 국내 의대생들이 CD, Video와 같은 디지털매체를 통하여 나름 문화·예술을 즐기고 있다. 그러나 교향곡을 감상하려 콘서트홀을 찾아가서 경험하는 것과는 완연히 다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콘서트홀이나 극장에서 문화·예술을 즐기는 것을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의료인이 더욱 의료인답게’ 만드는 요소는 분명 ‘문화·예술 비타민(Vitamin) ’에 있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의사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적 소양을 키워야 한다. 추천하는 책 기업가 워렌 버핏(Warren Edward Buffett, 1930~)이 인문학을 강조한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기업가로 성장한 거부 워렌 버핏이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같은 축에서 한 미국 사회비평가는, "부자는 자식에게 인문학을 가르치고, 가난한 자는 기술을 가르친다"라고 했다.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묵직한 메시지이다.
오귀스트 로댕, <신의 손(Hand of God, 1896~1902)>, 73.7 × 60.3 × 64.1 cm, 대리석,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우리 인류의 진화과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손’을 꼽을 수 있다. 엄지손가락이 다른 손가락과 맞설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은 정교한 손재주를 가지게 되었고, 결국 다른 동물과 다른, 새로운 문명 세계를 열게 되었다. 특히 엄지손가락은 다양한 움직임을 자유자재로 하면서 손이 하는 일 가운데 45% 가량을 혼자 할 수 있다.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3~1727)은 ‘엄지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있다’고 감탄했다. 손으로 다양한 활동이 가능해지면서 인류는 네 발로 걷기보다 두 발로 걷고 남은 두 손을 자유롭게 쓰기 시작하였다. 즉, 손의 발달이 직립 보행을 가능하게 하며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도구를 쓴 사람’이라는 뜻)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이는 약 150~200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화석을 통해 당시 인류가 단순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음을 의미한다. 점차 다양한 도구와 불을 사용하면서 인류의 뇌는 더욱 커졌고, 새로운 도구들을 만들거나 유용한 행동들을 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인류에게 손은 단순의 신체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손이 크다’나 ‘손에 익다’와 같이 기술이나 노력, 어떤 사람의 능력이나 힘, 심지어 일을 하는데 필요한 사람 등 다양한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또한 인류의 발달에 있어 중요한 집단생활과 그 속의 인간관계에 대한 것 또한 ‘손을 내밀다’와 같은 관용어로 표현된다. 즉, '손 덕택에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할 정도로 인류에게 손은 신의 축복이자 바로 삶의 역사라고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손을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손의 아름다움과 함께 인체 속에서 의미를 생각해 보자. 1. 작품 소개 (신의 손, 오귀스트 로댕) 이 ‘손’에 대한 관심이 매우 많은 조각가가 있다. 프랑스의 조각가인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 이후 서양 조각계에서 누구보다도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조각가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생각하는 사람>은 원래 프랑스 정부가 로댕에게 장식예술미술관의 출입문으로 제작을 의뢰한 <지옥의 문(Porte de l’Enfer)>이라는 작품의 일부다. 높이 7m에 무게가 8t인 거대한 <지옥의 문>은 단테(Durante degli Alighieri, 1265~1321)의 『신곡』에서 영향을 받아 제작한 것이다. 로댕은 지옥으로 가는 인간의 고통과 슬픔, 죽음을 표현한 신곡 내용을 토대로 생각에 잠긴 사람을 문 위에 넣었는데, 1880년에 이를 별도로 떼어내어 크게 제작한 것이 바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2010년 서울에서 로댕의 전시회가 열렸는데, 그 제목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 '신의 손-로댕'이었다. <신의 손(Hand of God, 1898~1902)>은 단 한 번도 파리 로댕박물관에서 외부로 내보내지 않았던 작품으로 이것을 대여하기 위해서 전시회 제목을 이렇게 지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 이 작품은 창조주의 손을 상징하는데,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람의 형상이 손 안에서 빚어지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손 안의 아담과 이브는 미완성으로 남겨놓고, 오직 손에만 집중하게 관찰하게끔 만든다. 창조주가 아담과 이브를 만들 듯이 울퉁불퉁한 돌덩이가 로댕의 손에 의해 작품으로 탄생하는데, 제목 그대로 신의 손이다. 하지만 로댕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허영심이나 자만심이 아니라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최고의 창조물인 인간과 생명을 재현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며, 수많은 작품을 제작한 것이다. 작품을 더 상세히 들여다보면, 손에 쥐어진 돌 안쪽에는 한 쌍의 남녀, 아담과 이브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다. 남자는 얼굴을 여인의 가슴에 파묻고 팔로 그녀의 머리를 감은 채 온 몸을 그녀에게 맡긴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사랑을 나누는 남녀의 모습으로도 생각되지만, 배 속 깊숙이 자궁 쪽을 향해 들어가려는 남자의 모습은 엄마의 배속을 그리워하던 아기와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창조주가 아담과 이브를 탄생시켰듯이, 인류는 사랑을 나누며 2세라는 결실을 맺고, 어머니의 배속에서 자라 출산을 통해 탄생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즉, 이러한 조각을 창조하는 로댕뿐 아니라 우리 모두 또 하나의 의미를 가진 창조주가 아닐까. 신의 손(Hand of God)의 속면 2. 손의 구조 손은 인체에서 가장 복잡한 부위다. 한쪽 손을 이루는 뼈는 손목뼈 8개, 손바닥뼈 5개, 손가락뼈 14개로 총 27개로 이루어져 있다. 양손에 총 54개의 뼈가 있는 것인데, 이는 인체에 있는 뼈의 4분의 1이 넘는 개수이다. 여기에 많은 근육이 붙어서 손은 다양한 관절운동이 가능하여 물건을 잡는 등의 다양한 움직임을 할 수 있다. 특히 물건을 잡는 악력(아귀힘, grip strength)은 남성에서는 약 40-50 Kg 정도이고, 여성은 이것의 절반 정도인 25 Kg 전후이다. 평균 수명으로 계산하였을 때, 우리는 일평생 2,500만 번 정도 손가락을 펴고 굽혔다한다. 그만큼 손은 많이 움직이기 때문에 외부와의 접촉과 부상의 위험이 높다. 따라서 손가락의 끝은 반투명의 단단한 케라틴 판인 손톱이 있다. 손톱은 손끝을 보호하기도 하며, 손가락에 힘을 더 해주어 손가락의 사용에 있어 효율을 증대시킨다. 또한 손의 피부에는 감각수용기가 잘 발달되어 있다. 이로 인해 손가락은 감촉뿐 아니라 열·고통 따위 감각을 인체 어느 부위보다 가장 예민하게 느낀다. 피막이 없는 무피막수용기로 촉각상피세포(tactile epithelial cell, Merkel cell)은 가벼운 촉각이나 물체의 감촉을 감지한다. 자유신경종말은 고온이나 저온, 통증 등에 반응한다. 피막수용기에는 촉각소체나 루피니소체가 손에 발달되어 있다. 촉각소체(Meissner corpuscle)는 가벼운촉각이나 저주파자극에 반응하며 손가락 끝에 많으며, 루피니소체는 피부의 장력이나 회전, 뒤틀림을 감지한다. 또한 손은 발바닥과 함께 인체 어느 부위보다 많은 땀샘이 있다(약 150∼300개/cm2). 손에는 주로 샘분비땀샘(eccrine sweat gland)가 분포하고 있으며, 땀에 의해 손바닥은 항상 촉촉한 상태를 유지한다. 이는 물건을 쥐는 동작이나 촉각에 도움을 준다. 3. 이 작품을 통해 학생들이 공부하고 생각해 볼 내용 (1) 5개의 손가락은 각각 고유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엄지손가락에서부터 새끼손가락까지 구조와 기능적인 차이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러한 특징을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손의 움직임의 의미를 생각해봅시다. (예: 손가락 욕, 커플링은 넷째손가락에, 약도 약지(藥指)인 넷째손가락을 이용하는 이유 등) (2) 오른손잡이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심지어 오른손(right)이 ‘옳다 혹은 바르다’와 같은 긍정적인 가치를 상징한다면 왼손(left)은 ‘불길하다, 사악하다, 버려지다’와 같은 부정적인 가치를 담고 있다. 약 20만 년 전 구석기 시대 사람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손도끼더미에서 오른손잡이용 손도끼 대 왼손잡이용 손도끼 비율은 대략 2 대 1이었다. 즉, 지금에 비해 당시에는 왼손잡이의 비율이 훨씬 높아서 지금과 같이 오른손잡이가 압도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에서 와서 오른손잡이가 절대적으로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3) 좌뇌와 우뇌의 차이는 어떤 것이 있을까? 남성과 여성의 사고방식과 뇌가 다르듯이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의 뇌 또한 다르다. 뇌의 신경은 좌우가 교차되어 몸으로 내려간다. 따라서 오른손잡이는 좌뇌가 발달해서 언어나 사고, 수학적 계산, 추리 능력에 뛰어나고 왼손잡이는 우뇌가 발달해 예술, 감성과 창의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실제로 아인슈타인, 뉴턴, 다윈, 다빈치 등의 역사적인 천재들이 왼손잡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4) 킹스맨이란 영화에서 ‘Manners maketh Man’ 이란 말이 나온다. 예의를 뜻하는 매너(manner)는 원래 ‘마누아리우스(manuarius)’라는 라틴어에서 기원한다. 이는 manus와 arius의 합성어로 manus는 ‘손(hand)’이란 뜻 외에 사람의 행동이나 습관, arius는 방식, 방법을 의미한다. 매너와 손이 연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매너손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4. 심화학습 (1) 이전 연구에 의하면 둘째손가락과 넷째손가락의 길이의 비율에 따라 남성과 여성호르몬의 비율이 다르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긴 둘째손가락은 에스트로젠의 과도한 노출을, 긴 넷째손가락은 테스토스테론의 과도한 노출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2D:4D 비율은 남녀 행동, 심리, 운동 능력 등과의 연관성을 보이기도 한다. 각자 어떤 연구를 할 수 있을지 생각해봅시다. Manning JT, Scutt D, Wilson J, Lewis-Jones DI. The ratio of 2nd and 4th digit ratio length: a predictor of sperm numbers and concentrations of testosteron hormone and oestrogen. Human Reproduction. 1998;13:3000-4. (2) 신체의 각 부위별 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의 비율을 입체적으로 구성한 호문쿨루스를 찾아봅시다. 캐나다의 신경외과의사인 와일더 펜필드가 처음 제안한 이 모델은 각 신체부위가 자극에 대하여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운동을 하는지를 나타낸다. 손이 상당히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데, 어떤 의의를 가지는 것일까? 운동피질 호문쿨루스(빨간색, 왼쪽)와 감각피질 호문쿨루스(파란색, 오른쪽). learnsomatics.ie에서 인용 (3) 동음이의어가 많은 우리말에 또 다른 의미를 가진 ‘손’이란 단어가 있다. ‘다른 곳에서 찾아온 사람’, 손님이라는 뜻이다. 또한 상대방에게 박수를 보내거나, 반가운 손인사를 하거나, 힘든 부모님에게 손으로 마사지를 하거나 양손으로 꼭 안아 주는 등의 행위들을 떠올리려보자.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이런 사소한 행위들이야말로 가장 세심한 치유와 위로의 출발일지도 모른다. 손으로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일들이 아주 많은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또는 누군가에게 손을 먼저 내밀었던 경험이 있었는지? 지금 가장 손을 내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5. 더 공부하고자 할 때 도움이 될 참고자료 (1) 데즈먼드 모리스. 바디워칭, 이규범 역, 범양사, 2017. (2) 이재호. 알고나면 쉬워지는 해부학이야기, 범문에듀케이션, 2019. (3) 로댕 '생각하는 사람'의 근육. 한국경제신문, 2023.2.8.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3020837591 (4) Manning JT, Scutt D, Wilson J, Lewis-Jones DI. The ratio of 2nd and 4th digit ratio length: a predictor of sperm numbers and concentrations of testosteron hormone and oestrogen. Human Reproduction. 1998;13:3000-4. (5) Penfield W, Boldrey E. Somatic motor and sensory representation in the cerebral cortex of man as studied by electrical stimulation. Brain 1937;60:389–440.
- 그렇게 많던 일본의 한의사(전통의사)는 다 어디로 갔을까? Ishikawa Tairo(石川大浪). Sugita Genpaku(杉田玄白)의 초상. 19세기 초 편견을 없애기 위해 누구인지 알기 전에 아무 설명없이 이 초상화를 살펴보자. 약간 수척한 몸에 주름진 얼굴을 한 노인이 앉아 있다. 배경에는 매화 가지가 있고 앞에는 책이 놓여져 있으며, 검소한 옷을 입고 있어서 공부하는 사람임을 알려주고 있다.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 목에도 주름이 졌고, 쌍까풀이 없는 눈은 안검하수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눈빛은 살아 있고 온화한 느낌과 함께 총명함이 드러난다. 반짝이는 눈은 마음이 젊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꾹 다문 입매를 보면 내면의 의지가 강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이 사람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활동한 일본의 전통의학을 공부한 의사였다. 온화한 모습이 의사와 잘 어울린다. 원래 사무라이 계급이지만 전쟁이 없는 평화시대의 사무라이는 여러 가지 일을 해왔다. 그는 전통적인 한의학을 공부하여 에도시대 오바마 번(小浜藩)의 번의(藩醫)가 되었다. 그런데 나가사키에 들어 온 네델란드의 문물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젊은 전통 한의사는 그 후 열심히 서양의학을 공부해서 ‘의사’로 탈바꿈을 했다. (주: 번(藩)은 제후가 통치하는 지역을 가리키며, 번의(藩醫)는 그 지역을 담당하는 의사를 가리킨다) 일본 여행을 하다 보면 일본전통의학(한의학)을 진료하는 우리나라의 한의원에 해당하는 병원이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나라 의료는 한의학이 독립되어 있어서 의료가 양방과 한방으로 2원화되어 있다. 이로 인해 많은 모순을 겪고 있다. 일본에서 전통의학을 다루는 의원을 볼 수 없어서 필자는 해외학회에서 만난 일본 의사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본 적이 있다. 그 때 들은 답은 좀 충격적이었다. 서양의학을 접한 일본의 전통의사들은 기를 쓰고 서양의학을 배우기 시작했고, 나이가 너무 들어서 직접 공부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자식을 보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일본 전통의사가 서양의학을 공부한 의사로 탈바꿈을 했다는 것이다. 다시 초상화로 돌아가 보자. 모델이 된 사람은 스기타 겐바쿠(杉田玄白)로 서양의학 공부를 진짜로 열심히 했다. 결국에는 서양의학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네덜란드에서 출판된 해부학 책을 4년에 걸쳐서 번역을 했다. 전통의학에서는 개념도 없었던 동맥, 정맥, 신경, 연골 등의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가면서 엄청난 일을 해낸 것이다. 한자어 문화권의 의학은 스기타 겐바쿠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1774년에 『解体新書(카이타이 신쇼)』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이 해부학 책은 발간되자마자 매진이 되었다. 전통의학을 공부한 의사가 서양의학 공부에 매진한, 자기 직업에 대한 엄격한 프로페셔널리즘과 엄청난 지적 호기심을 발휘한 저변이 놀랍다. 그리고 보니 저 초상화에 펼쳐진 책이 바로 『解体新書』이고 그림이 해부도인 것 같다. 『解体新書』가 발간되기 전인 1759년에 야마와키 토요(山脇東洋)이라는 또 다른 일본 전통의사가 시체의 복부를 해부한 적이 있다. 그는 이 경험을 藏志(장지)라는 이름으로 출간한 바 있다. 동양의 전통의학에서 이야기하는 오장육부와 실제 장기는 아주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새롭게 공부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일본 전통의학을 다루는 의사들은 다 알고 있었다. 藏志(장지)가 출간되고 4년 뒤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했다. 조선통신사 일행중에는 수행원으로 간 조선의 한의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서양의학에 매료된 일본 의사가 조선의 한의사에게 말했다. ‘새로 나온 책을 읽어 봐라.... 배를 갈라서 보니 우리가 전통적으로 배웠던 오장육부와는 많이 다르다. 나는 새로운 지식을 공부하고 있다......’ 조선의 한의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적혀있다. ‘배를 갈라서 아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하는 짓이고, 가르지 않고도 아는 것은 성인만이 할 수 있으니, 미혹되지 말라. 우리는 새로운 설에 흔들리지 말고 옛 성현의 가르침을 익히는 것으로 족하다’ 조선의 한의사는 남두민이고, 일본의 의사는 기타야마 쇼우(北山彰)였다. 의사로서의 프로페셔널리즘과 지적인 호기심에서 참패한 것이다. 그 이후 일본은 조선통신사를 청하지 않았다, 1811년의 마지막 통신사는 대마도에서 국서만 교환하고 돌아가야했다. 조선으로부터 전혀 배울 것이 없다고 느낀 것이다. 한국에서도 한의사로서 서양의학을 열심히 익힌 분들이 있었다. 지석영, 김익남 같은 분들은 원래 한의사였다. 특히 지석영은 대한제국 때 설립된 관립의학교의 교장으로 서양의학을 공부하는 의사들을 배출한 분이다. 그런데 그런 지적 호기심과 뚜렷한 프로페셔널리즘으로 무장된 인물이 조선에는 너무 적었던 것이다. 지석영 선생의 잘못은 아니지만 만약 그때 관립의학교에서 젊고 똑똑한 기존의 한의사들을 입학시켰더라면 한국의 의료이원화는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만약 지금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했는데 우리의 의학을 뛰어넘는 의학을 가지고 있다면 누가 이를 배워야 할까? 일본의 전통의사들이 서양의학을 기를 쓰고 배웠듯이 현재 지구의 의사들이 외계의학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프로페셔널리즘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구의 의사는 신토불이를 내세우면서 지구의학을 사수하고, 외계의학은 기존의 의사와는 다른 사람들이 배워서 지구의학과 외계의학으로 2원화가 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혹자는 인생은 젊어서 죽거나 나이가 드는 것 두가지 가능성만 있다고 말한다. 의사로 진료를 하면서 여러 나이 듦, 즉 노화와 죽음을 접하다 보니 이런 말이 점점 마음에 와 닿는다. 만성 질환이 있어 정기적으로 진료실을 방문하던 환자들도 10여 년이 지나면 치매 또는 파킨슨병이 발생하여 인지기능이 떨어져 진료 시간 내내 갖가지 불편함을 호소하시던 옛 모습은 오간데 없고 조용히 가족 손에 이끌려 진료실로 들어오는 환자를 볼 때마다 마음이 착잡하다. 이러한 상황은 경륜이 짧은 의사들에게는 경험하기 힘든 상황이다. 의사로서 경험하는 죽음의 모습도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존엄하고 경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경우가 많다. 예측되지 않은 병사 현장은 심폐소생술 등으로 아수라장일 경우가 많다. 오랜 투병 끝에 죽음을 맞이하는 암환자의 경우도 죽음을 앞둔 한달 간은 다양한 증상과 여러 도관 삽관, 정맥 주사, 산소공급 등의 처치를 받느라 조용하지는 않다. 진료실과 병실에서 환자의 고통을 직접 접하는 시간은 환자와 가족, 이웃이 당면하는 오랜 투병과정에 거의 찰나에 가깝다. 따라서 의사가 짧은 진료 면담 과정을 통해 질병과 함께 따라온 환자 및 가족이 겪는 문제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온전히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이 점에서 일반인들이 의사들에 대하여 공감력이 떨어지고 냉정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이해는 되지만 의사로서 억울한 측면도 있다. 의학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이 볼 수 있는 것처럼 진료현장 뿐 아니라 진료실 밖의 환자들 상황을 같이 시청할 수 있다면 더 많은 공감이 가능하고 그렇다면 의사들도 더 사려 깊은 의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따라서 진료실 밖에서 환자 및 가족이 당면한 고통에 대하여 의사는 항상 겸손하고 열린 마음이 되어야 한다. 또한 의사로서 타인의 인생과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이해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문학이나 영화 등을 통하여 간접 경험을 하는 것도 중요하며 필요하다. 따라서 여러 의과대학에서 의인문학을 개설하여 교육 기회를 제공해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급속히 노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핵가족화 되면서 의사로서 노년을 이해하고 핵가족 하에서 노년들의 신체적, 정신적 질병 문제를 개인과 사회적인 면에서 이해하는 것은 임상 각 과를 막론하고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진료 현장에서 암 등 중증 질환으로 진단받은 노인환자들 대다수가 독거이거나 자녀는 있지만 노부부만이 생활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인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나이 듦과 노년의 죽음에 관한 두가지 영화를 추천하고 노년의 특성과 노년 간병의 어려움에 대하여 같이 생각해 보기로 한다. 오토라는 남자 (A Man Called Otto, 2023) 1. 영화 소개 오토는 부인과 사별하고 오래 근무하던 직장에서 정년 퇴직을 하게 된 괴팍한 독거노인이다. 사실 괴팍하다는 것은 외부의 시선일 뿐이고 오토는 단지 오래 동안 살아오고 있는 빌라 단지의 질서를 지키고 규칙을 준수하면서 규칙을 지키지 않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참지 못하고 지적할 뿐이다. 원래 오토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입대 하고자 하였으나 비후성 심근증(hypertrophic cardiomyopathy)로 입대가 좌절된다. 신검 후 귀가 길 우연히 기차역에서 책을 떨어트린 여성에게 책을 찾아주면서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된다, 자동차 수리공인 오토는 선생님이며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소냐를 만난 후 흑백처럼 단순한 삶이 다채로운 총천연색의 아름다운 인생으로 바뀌었다고 회상할 정도로 행복하게 살았다. 단지 좋아하는 자동차의 브랜드가 달라 가까웠던 동네 친구와 서먹한 관계가 될 정도로 본인 직무에 열심이긴 했지만 이웃과 교류도 하고. 평범하지만 행복한 생활을 보냈다. 부인과 같이 간 여행에서 교통사고로 부인이 유산을 한 아픔 속에 자녀는 없었지만 사랑스럽고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부인이 있는 동안 오토는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부인과 사별한 후 그의 인생은 그저 의미 없는 시간일 뿐이었다. 오토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하고 여러가지 자살 시도를 하지만 이웃에 새로 이사 온 마리솔이 우연히 개입하게 되면서 번번히 실패하게 된다. 마리솔은 멕시코 이민자 여성으로 임신한 몸으로 착하기만 한 미국인 남편과 두 딸과 함께 오토의 빌라 단지로 이사를 오게 된다. 이사 날 남편이 주차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못마땅하게 지켜보던 오토가 마리솔의 부탁으로 남편을 대신해 주차를 해 준다. 이 일 이후로 마리솔은 활달한 성격으로 오토에게 사다리나 공구들을 빌리거나 운전을 부탁하는 등 여러 도움을 청하여 오토의 생활에 개입하게 된다. 마리솔은 오토에게 운전을 가르쳐 달라고도 하고, 아이들을 봐 달라고도 청한다. 또 남편이 병원 갈 때도 태워달라고 부탁한다. 마리솔은 오토가 까칠하지만 내면적으로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오토의 마음의 문을 열게 해 준다. 주민을 이주시켜 오래된 빌라를 재개발하려는 부동산업자가 파킨슨병으로 부인의 보살핌속에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선호하는 자동차 회사가 달라 사이가 멀어진 친구-를 요양원으로 보내려는 부동산업자의 음모를 이웃과 합세하여 물리치게 되는 과정을 통해 지역 사회에도 도움을 주는 인물이 된다. 어느 날 겨울 아침, 오토 집 앞에 눈이 치워져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마리솔이 급하게 오토의 집을 찾아가니 침대에서 돌연사한 오토를 발견하고 마리솔이 오열한다. 오토는 항상 그대로 성실하고 사회의 질서를 준수하고 평범한 남편으로서 살아왔지만 세상은 변화한다. 부인이 세상을 떠나고 직장에서 은퇴 후 본인을 사랑해줄 사람도, 또 본인이 보살펴 주어야 할 사람도 없다. 경제력은 있지만 독거 노인이 된 것이다. 세상은 사소한 규칙조차도 지키지 않는 사람들로 넘쳐 난다. 이웃 친구도 파킨슨병으로 소통이 불가하며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 본인은 심장병이 있지만 특별한 증상은 없다. 병명도 심장이 커서 문제라 사람들은 그것이 병인지 이해를 못하고 웃음으로 넘긴다(실제 영화에서 마리솔이 병명을 듣고 이해를 못하겠다고 박장 대소를 한다). 이웃도 오토의 괴퍅함을 이해하지만 다가가지는 않는다. 오토는 도움을 원하는 노인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에 기여하고 누군가를 돌볼 수 있고 사랑을 주고 싶은 사람이다. 마리솔이 오토에게 준 것은 공경으로 편하게 해드리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오랜 주민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이웃의 한사람으로 대한 것이다. 2. 함께 생각해 봐야 할 내용 (1) 오토가 생을 마감하고자 하다가 다시 삶을 살아가게 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경로와 참여측면에서 논의해 보자 (2) 오토는 돌연사로 생을 마감했다. 이는 오토가 앓고 있던 비후성 심근증과 관련이 있을까? (3) 이웃의 독거노인이 있다면 주의 깊게 관찰할 위험 신호는 무엇이 있을까? (4) 오토의 친구는 부동산 업자에 의하여 가족으로부터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한다고 시에서 판정되어 요양시설로 옮겨질 상황에 처하게 된다. 가족 돌봄과 시설 돌봄의 장단점에 대하여 논의해 보자. 3. 해설 오토의 문제는 사랑과 관심의 결핍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자기 효능감은 삶을 지탱해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많은 노인과 장애인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이 인간으로서 자기 효능감의 상실이다.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독립적인 경제 생활을 영위하는데 위협이 되지만 그 이면에는 자기 효능감의 문제이다. 사회에 기여하고 사회의 일부분이 되어 생할 할 수 없다는 것 자기 효용성의 상실은 인간으로서 실존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렇 때 생을 스스로 포기하는 우울감들이 나타날 수 있다. 이 영화는 노년의 문제에서 공경과 보살핌과는 다른 노년의 자기 효능감의 중요성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다. (1) 비후성 심근병증 (Hypertrophic Cardiomyopathy) 특별한 원인없이 좌심실 비후로 확장기능 이상을 나타내는 질환으로 비대칭적 심실 중격비후와 승모판 전엽의 수축기 전방이동으로 인한 역동적 좌심실 유출로 폐쇄를 특징으로 한다. 약 반수에서 상염색체 우성 양상을 보이는 가족력이 있다. 임상양상으로는 다양하지만 무증상이거나 경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호흡곤란이 가장 흔한 증상으로 운동시 주로 나타난다. 심방세동등의 부정맥이 병발하면 확장기 후반 심실 충만에 기여하는 좌심방 수축 기능이 상실되므로 증상이 급격히 악화된다. 드물게는 젊은 연령에서 과도한 운동시에 돌연심장사를 할 수도 있으므로 과도한 운동은 피해야 한다. 치료는 임상양상에 따라 약물치료를 시도할 수 있다. 심장박동기의 삽입등이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고 심각한 환자에서는 수술도 시도할 수 있다. 자연경과는 다양하여 문제없이 지내기도 하지만 안정적인 경과를 보이던 환자에서 돌연심장사가 나타날 수도 있다. 아무르 (Amour, 2012) 1. 영화 소개 은퇴한 파아니스트인 부인과 파리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남편의 간병이야기다. 단순한 간병이라고 말하기에는 무거운 이야기지만 사실 현실에서 보는 노년의 질환에 대한 간병 현실은 영화보다 더 힘들다. 은퇴해서 조용한 노년을 보내는 피아니스트 안느는 어느 날 아침 식사도중 갑자기 미동도 안 하는 상태가 된다. 남편 조르주는 당황하여 흔들어 보고 물수건을 적셔오고 하지만 반응이 없다. 잠시 후 깨어난 안느는 이런 상황을 기억을 못한다. 병원에서 진단은 경동맥폐쇄, 수술에 따르는 위험성은 5%라고 하였지만 결국 우측 마비 상태가 되어 퇴원을 한다. 퇴원 후 안느는 남편에게 다시는 병원에 데려가지 말아 줄 것을 간곡하게 요구하고 조르주는 약속한다. 조르주는 홀로 간병을 하지만 안느의 상태는 점점 나빠져 스스로 대소변을 못 가리는 상태가 되고 언어 소통도 안 되는 상태가 된다. 안느는 더 이상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치료법은 없고 요양병원에 입원할 수 밖에 없는 상태라는 판정을 받는다. 주 3회 가정 방문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오다 상태가 나빠져 입주 간호사를 채용하지만 간호사의 업무 방식에 화가 난 조르주는 간호사를 해고 하고 만다. 조르주는 안느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 하지만 안느가 거부하자 안느의 뺨을 때리고 만다. 딸이 간혹 방문하지만 병원에 입원 시킬 것과 다른 의사에게 진료 받아볼 것을 요구하여 조르주와 갈등을 일으킨다. 어느날 안느가 고통에 몸부림 칠 때 과거 자신의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해주면서 안정이 되자 갑자기 베개로 안느를 질식사시킨다. 조르주는 침대를 꽃잎으로 치장 후 안느의 방문을 테이프로 막아 버린다. 노년의 중병은 대개 갑자기 찾아온다. 당뇨나 고혈압과 같은 성인병으로 지속적으로 병원을 다니던 분이 아닌데 갑자기 검진에서 또는 최근에 생긴 증상으로 진료시 암 등의 중병으로 진단받는 경우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충격은 매우 크다. 진단 이후 과정은 대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의사의 권유에 따라 진행된다. 다행히 완치된다면 다시 건강을 회복하고 일상으로 복귀할 시간이 주어지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려운 투병과정을 겪고 사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전혀 예상하지도 않고 준비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모든 삶이 혼돈 속으로 빠져 들어 가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인 조르주와 안느도 마찬가지이다. 발병 몇 일전 즐겁게 제자의 음악회를 즐기고 여생을 즐기는 순간 벼락처럼 투병의 질곡으로 떨어진 것이다. 아내와 남편이 아닌 환자와 간병인으로 역할이 바뀐 것이다. 우아한 음악가에서 본인의 위생도 처리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가족과 친지들이 있지만 결국에는 국외자이다 이 영화에서 병원이나 진료 장면, 의사의 모습은 단 한차례도 나오지 않는다. 배경은 노부부의 아파트 단 한곳이며 등장 인물도 한번 찾아온 제자 피아니스트, 관리인 부부, 딸과 사위, 간병 방문 간호사일 뿐이다. 이것은 마치 투병과정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본인과 배우자가 온전히 감당해야만 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장치인 것 같다. 만일 진료 장면이나 의사가 나오는 장면이 삽입된다 하더라도 그저 사무적인 상담, 권고 정도일 수밖에 없다. 긴 투병과정에서는 의사 역시 국외자일 뿐이다. 이 영화는 적극적인 안락사–사실은 이 영화에서 살인에 해당하지만-를 다루는 것보다는 죽음에 다가가는 말기 환자와 그 배우자가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고통을 꽤 조용하게 다루었다. 현재 말기 암환자나 치매 등으로 회복이 어려운 환자들은 요양 병원에서 대부분 임종을 맞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족이 가정에서 끝까지 돌보는 것은 여러 면에서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사 입장에서 판단할 때도 정서적인 장점 이외에는 그리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 영화는 그 정서적인 면의 이면도 보여준다. 조르주와 가족이 안느를 요양시설로 옮겼더라면 어땠을 까? 영화의 제목은 아무르, 사랑이다. 돌봄의 사랑은 헌신과 함께 현명해야 한다. 병원에 다시는 데리고 가지 말라는 안느의 바람은 남은 조르주에게 너무나도 잔인한 결과를 남길 뿐이지 않을까? 2. 함께 생각해 봐야 할 내용 (1) 가정 돌봄의 한계 상황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 말기 환자의 가정내 돌봄과 요양시설에서의 돌봄에 대하여 논의해 보자. (2) 환자 가족이 겪는 고통은 무엇이며 의사가 어떠한 지지적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논의해 보자. (3) 이 영화의 제목은 사랑이다. 이 영화에서 사랑의 의미는 긍적적인 면인가 부정적인 면인지 각각 논의해 보자. 3. 해설 (1) 경동맥 협착증(Carotid artery stenosis) 경동맥 협착증은 경동맥이 좁아지고 딱딱해지는 질환이다. 경동맥은 심장에서 나온 혈액을 뇌로 보내 뇌가 원활하게 기능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공급하는 혈관으로, 뇌로 가는 혈액의 80%를 보내는 중요한 혈관이다. 경동맥 협착증은 동맥 경화 등으로 경동맥 내강이 협착 폐쇄되는 질환으로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등의 성인병, 스트레스, 특히 흡연 등과 깊은 관련이 있다. 60대 이상에서 호발한다. 최근에는 생활 습관의 변화로 인해 경동맥 질환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고 있으며 허혈성 뇌혈관 질환 중 경동맥 질환이 약 30%를 차지한다. 경동맥의 절반 이상이 막혀도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만일 증상이 나타난다면 일시적인 시력 소실, 어지럼증, 한쪽 팔다리 마비, 언어 장애와 같은 안구 혹은 신경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간혹 이러한 증상이 발생했다가 수 분 혹은 수 시간 이내에 저절로 소실되는 ‘일과성 허혈 발작’이 생길 수 있다. 무증상 협착의 경우에도 뇌졸중이 발생하는 비율이 연간 3~4%에 이른다. 경동맥 협착증이 대뇌에 발생하는 경우 반신부전마비, 감각 이상, 언어 장애 등의 증상을 유발할 수 있으며, 소뇌에 발생하는 경우 어지럼증이나 운동실조증 등을 유발할 수 있다. 경동맥 협착증은 경동맥 초음파로 간단히 진단할 수 있다. 필요하면 컴퓨터 단층촬영(CT), 경동맥 도플러 검사, 자기공명촬영(MRI)을 이용한 경동맥 조영술을 통해 경동맥 협착증의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협착이 심하거나 뇌허혈 증상이 있으면 예방 차원에서 경동맥 확장술을 시행하여 뇌경색의 위험을 예방할 수 있다. 경동맥 협착증의 치료 방법으로는 항혈소판제제와 같은 약물을 투여하는 방법과 혈관 수술로 혈관 내벽의 죽상경화반을 제거하거나 혈관 우회로를 만드는 방법이 있다. 최근에는 뇌혈관 중재술이 발달하여 경동맥 스텐트 삽입술이 널리 시행되고 있다. 추천 도서 나이듦에 관하여(Elderhood) : 루이스 애런슨 지음 <퍼블리셔스 위클리 서평>노인학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있다.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 병원 노인의학 교수인 루이스 애런슨의 뛰어난 공감능력과 귀중한 지식, 현실에 대한 생생한 보고는 이 책을 오늘날 의학계가 노인을 대하는 방식을 고발하는 최고의 도서 중 하나로 만들었다. 애런슨의 의과대학생에서 노인의학 전문가로서의 되기까지의 성장기이기도 하다.